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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진의 武脈 ] ⑧ 반탄(反彈)의 민족무예 기천문(氣天門)

상대방을 한방에 눕히는 ‘殺手’

관련이슈 : 박정진의 武脈

 

•십팔기(十八技)가 우리의 족보 있는 무예의 보고라면 기천문(氣天門)은 족보가 제대로 없이 교외별전(敎外別傳)으로 내려온 선가(仙家)의 보고이다. 때때로 문화는 족보가 없이도 면면히 내려와 문화인자(文化因子)로 인하여 새롭게 재생되고 부활하는 것을 볼 수 있다.

 

기천문에도 권법을 비롯하여 검법과 창법이 고스란히 보존되어 있으며 우리 민족 특유의 단전호흡법인 기법(氣法)마저도 계승되어 있음을 볼 수 있다. 이는 참으로 불가사의하다. 기천문에서는 대륙의 기질과 사나운 북풍과 맞서 싸우면서 살아온 우리 민족의 삶을 읽을 수 있다. 택견이 유희적 성격이 강하였다면 기천은 살수(殺手)로 바로 이어지는 무예였다.

 

 

 

◇박사규 기천문 2대 문주가 단군에게 예를 올리는 단배공 자세를 하고 있다.

 

민족의 성산(聖山), 백두산을 거점으로 형성된 한민족 고유의 무예 기천문(氣天門). 그동안 말로만 전해오고 귀로만 들려오던 산중무예의 진수를 보여주는 기천은 설악산에서 수련해 오던 1대 문주(門主) 박대양(朴大洋) 진인(眞人)이 1970년대 시중에 내려옴으로써 새로운 시대를 맞는다. 그동안 기천은 산에서 산으로 옮겨가면서 비전으로 전해왔는데 백두산에서 태백산으로, 태백산에서 설악산으로 백두대간을 타고 내려왔다. 백두산 시대는 전설 같은 시대이고, 태백산 시대는 박대양 진인의 스승인 원혜상인(元慧上人)의 시대이고, 그 이전은 민족의 지킴이가 전해왔다고 할 수밖에 없다. 지킴이는 글자 그대로 이 땅의 지킴이다. 지킴이는 민족의 위기 때마다 홀연히 나타나서 장수들을 도와주고 바람처럼 사라졌다.

 

기천문을 비유하자면 바로 ‘바람’이라고 할 수 있다. 그 옛날 백두산은 대풍산(大風山)이었다. ‘큰 바람 산’이다. 그래서 기천의 일곱 가지 보배 같은 절권(七寶切拳)에서 그 처음이 바로 대풍(大風)이다. 대풍이란 싸움에서 상대방의 몸에 바짝 붙어서 벌이는 역수(逆手)이다. 여기서 웬만한 무예는 모두 나가떨어진다. 그 다음이 풍수(風手)이다. 풍수는 반탄(反彈)의 수로 원으로 감아서 치는 것을 말한다. 반탄이란 항상 힘을 쓰려는 방향과 반대로 역근(逆筋)을 통해서 궁극적으로 목표인 합(合)에 도달하는, 공격의 탄력성을 높이는 것이다. 또 끊어서 치는 것이 아니라 물 흐르듯이 연결하며 쭉쭉 밀어서 찔러주는 솜씨는 엄청난 파괴력과 함께 언제나 예상 밖의 권법(拳法)을 하나 더 가지고 있어서 상대의 허점을 공격한다.

 

쉽게 말하면 반탄이란 움직이려는 방향과 반대로 먼저 움직여서 반작용의 힘을 사용하여 계속 탄력성을 잃지 않고 공격할 수 있는 원(圓)의 무예이다. 이것은 공격이 실패하였을 때 방어에도 효과적이고 다시 다른 수를 넣을 수 있는 공간이 있는 수이다. 기천에서 비연수(飛燕手)는 정말 살수(殺手)이다. 상대를 한 방에 눕히는 수이다. 산에 가면 돌제비라는 것이 있다. 돌제비는 몸집이 작지만 몇 마리가 모이면 독수리도 막아낸다. 그 돌제비가 날개를 치면서 독수리를 막아내는 것에 비유한 수이다. 이 비연수는 현재 2대 문주인 박사규(朴士奎·60세) 도인(道人)이 자신의 합기도 실력으로 1대 문주인 박대양 진인에게 승부를 걸었다가 순식간에 나가떨어지고 무릎을 꿇음으로써 기천에 입문하게 된 문제의 살수이다.

 

바람의 무예, 가장 탄력성이 높은 무예, 기천은 선가(仙家)나 도가(道家)의 특성상 기록을 회피하고 산중비전(山中秘傳)으로 전해왔기에 오직 무예의 실증으로 민족의 주인임을 당당히 내세울 수밖에 없다. 기천문인이면 누구나 “말이나 글에 집착하지 말고 몸으로만 수행하라”는 좌우명을 잊지 않고 있다. 내가신장(內家神將)은 기천의 트레이드 마크이다. 보이지도 잡히지도 않고 무게도 형체도 이름도 없는 것에 도전하는 도반들은 처음이자 끝이라고도 할 수 있는 내가신장의 자세를 통해 기(氣)의 오묘한 세계에 접한다.

 

 

◇박사규 문주가 제자들의 내가신장을 테스트하고 있다.

 

기천이란 ‘몸으로 닦는 도(道)’이다. 기천의 도학은 ‘몸으로 중용을 깨닫는 도’라고 한다. 내가신장은 ‘기천태양역근마법내가산장’(氣天太陽易筋馬法內家神將)의 줄임말이다. 내가신장에서 역근법(易筋法)은 기천문의 독특한 수련법이다. 반탄(反彈)은 역근의 원리가 있기에 가능하다. 흔히 역근법은 달마의 소림무술에서 시작한 것으로 알려져 왔는데 실은 바로 기천의 핵심이론이다. 역근은 역으로 꼬아서 힘이 안배가 되게 하는 이치에 따르는 것인데 생고무를 꼬아놓았을 때 원상태로 돌아가는 힘이 생기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처음엔 어렵지만 심신을 건강하게 하는 첩경이다. 기천문은 단학(丹學)에서도 가장 정면승부를 하는 수련법이다.

 

내가신장의 기마(騎馬)자세는 억지로 단전호흡을 하지 않아도 저절로 단전호흡을 하게 되고, 저절로 온몸이 떨리고 진동을 경험하게 되는 기법(氣法)이다. 내가신장 하나라도 금강(金剛)에 도달할 수 있다는 전설이 있을 정도이다. 말하자면 내가신장은 기천의 처음이자 끝이라고 할 수 있다. 겉으로 하늘의 기(氣)를 내세우는 기천문은 실지로 내용에서는 ‘지천합틀무(地天合틀無)’라는 역순의 원리를 숨기고 있다. 여기서 ‘틀’이란 태극을 말하는데 발음의 운을 위해서 ‘틀’이라는 말로 대체하였다. 왜 땅이 먼저인가. 인간은 땅에 사는 동물이기 때문이다. 땅에 살기 때문에 하늘을 동경하고 하늘의 법칙인 천부(天符)에 충실히 하려고 한다.

 

“원이 흐르다 멈추는 곳에 최대한 힘을 집중해서 공격한다. 공격은 흐르는 원 속의 한 점에 대한 순간적인 집중이다. 순간적인 집중이 고정되어서는 안 된다. 흐르는 이치는 물(水)과 같고 집중의 이치는 불(火)과 같다.” 물과 불의 이치를 무예에 그대로 적용한 무예, 기천문. 손 씀씀이는 화려한 꽃봉오리(手手花英)와 같고 걸음걸이는 나는 구름(步步飛雲)과 같다. 여기에 이르면 기천의 무예는 하늘과 땅의 흐름을 그대로 따르고(氣武天然) 한 자세는 아름답고 장엄하다(一態美儼). 이는 기천명(氣天銘)의 한 구절이다.

 

21세기는 ‘기(氣)의 세기’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 한중일 삼국의 학자와 도인들에게 회자하고 있다. 기(氣)과학, 기(氣)산업이 활발하게 거론되는 것도 이를 반영한다. 기천의 무예는 고구려뿐 아니라 북방민족 전반에 퍼졌던 것이다. 부여에서는 대천(代天)이라고 하였고, 고구려는 경천(敬天) 혹은 다물, 백제는 교천, 신라는 숭천(崇天), 발해는 진종(眞倧)이라고 하였다. 우리 조상들은 하늘을 가지고 여러 뜻을 노는 것을 좋아했다. 천손족인 까닭이다.

 

기천의 단계는 처음에 입문하면 행인(行人), 그리고 공인(功人), 정인(正人), 법인(法人), 도인(道人), 진인(眞人), 상인(上人)으로 나뉜다. 입문하면 처음에 행인(行人)이고, 한 10년 하면 공인(功人), 또 한 10년 하면 정인(正人)이 된다. 그 위에 법인(法人), 도인(道人)이 있다. 진인(眞人)이 되려면 거의 평생을 바쳐야 하고 상인(上人)이 되는 것은 노력이라기보다는 타고나야 한다. 내공 위주의 정적인 수련을 정공(靜功, 正功), 외공 위주의 동적인 수련을 동공(動功)이라고 한다.

 

 

◇산중수련에 취해 있는 여성수련자들. 기천문에는 여성무예인 천선녀 전설이 있다.

 

옛말에 지성(至誠)이면 감천(感天)이고 감천이면 순천(順天)하고 순천이면 응천(應天)하고 응천이면 청천(聽天)하고 청천이면 낙천(樂天)하고 낙천이면 대천(待天)하고 대천이면 두대천(頭戴天)하고 두대천이면 도천(禱天)하고 도천이면 시천(侍天)하고 시천이면 강천(講天)하고 강천이면 대효(大孝)하고 대효이면 안충(安衷)하게 된다는 말이 있다. 이는 하늘을 대하는 마음이 점점 층을 달리하여 승화됨을 말한다.

 

기천의 종가는 어디까지나 한민족이다. 따라서 민족웅비를 무예로 뒷받침한 것을 찾는다면 바로 기천이고, 고구려 무술의 흔적을 가장 많이 볼 수 있는 것도 기천이다. 기천인들은 단군에게 예를 올리는 단배공(檀拜功)을 외치면서 수련에 들어간다. 단배공은 하늘과 땅의 가운데에 내가 있음을 몸과 마음으로 체험하고 표현하는 것이다. 단배공은 단군배공(檀君拜功)의 줄임말이다. 지기(地氣)를 양손과 양발 끝에 모아 태산이 엎드리는 듯이 하는 인사법이다. 한 번 할 때 4∼5분을 한다. 이것 자체가 수련이다. 기천인들은 항상 산(山)의 이미지를 연상하면서 무술에 들어간다. 산은 한민족 문화의 원형이기 때문이다. 수행은 먼 산 오르듯이 한다. 힘을 쓸 때는 산을 들어올리듯이 하고 산을 밀듯이 하고 산을 내리누르듯이 한다.

 

기천문 2대 문주 박사규 도인(道人)을 만나러 계룡산을 찾았다. 기천문이 문주(門主)라는 직함을 쓰는 것은 중국의 소림파, 무당파, 화산파처럼 독립된 무술체계를 가진 무문(武門)임을 과시하기 위해서다. 계룡산 국립공원 입구에서 동학사(東鶴寺)와 신원사(新元寺)로 가는 삼거리에서 신원사 쪽으로 한 100여m 올라가니 기천문으로 올라가는 팻말이 보였다. 입구에서 차로 10여분 들어가니 ‘氣天門’이라는 큼지막한 입석이 보였다. 주변에는 암자, 당집이 산기슭에 늘어서 있었다. 계룡산 동쪽에는 동학사, 서쪽에는 갑사(甲寺), 남쪽에는 신원사가 있다. 북쪽에도 원래 절이 있었지만 폐사되어 현재는 비어 있다. 북쪽을 상신리(上莘里)라 부른다. 소설 ‘단’의 주인공 봉우 권태훈(1900∼1994) 옹이 상신리에서 오래 살았다고 한다.

 

신원사 오른쪽에 ‘중악단’(中岳壇)’이 설치되어 있다. 조선시대 국가적인 차원에서 산신을 모신 곳이 세 군데 있었다. 묘향산의 상악단(上岳壇), 계룡산의 중악단, 지리산의 하악단(下岳壇)이 그것이다. 세월이 흐르면서 상악단과 하악산은 사라졌지만, 계룡산 신원사의 중악단은 아직도 남아 있다. 그만큼 백두대간에서 비중 있는 포인트가 계룡산이다. 5000년 민족 정신사의 뿌리가 보존된 곳이 바로 계룡산 중악단이다. 계룡산과 함께 우리나라의 3대 변혁의 산은 황해도 구월산(九月山), 김해 모악산(母岳山)이다. 이들 산들은 모두 평지에 솟아 있는 산이다.

 

박사규 문주가 계룡산에서 머무른 것도 우연은 아닌 것 같다. 그는 갑사에 5년, 신원사에 2년 머물렀던 적이 있으며 여기에 ‘기천문 계룡본산’(鷄龍本山, 충남 공주시 계룡면 하대리 1구 191-1번지)을 잡은 것은 5년 전(단기 4540년 4월 24일)이다. 계룡산 일대에 머문 것은 12년째다. 마침 주말이라 전국에 흩어진 기천인들이 많이 모였다. 허름한 시골집을 개조해서 아담한 황토집 본산을 만들었다. 마당은 제자들로 붐빈다. 그의 호는 중용(中庸)이다. 호를 경전의 이름으로 쓰는 것이 특이하여 물었다. “호가 중용이군요.” “예, 그렇습니다. 좀 과분한 이름이지만 그 이름 때문이라도 실천을 하려고 배수진을 친 셈이지요.”

 

황토집 방안에 들어가니 조그마한 단군 영정이 놓여 있고 앉은뱅이 책상과 고목나무 밑둥을 다듬어 만든 널찍한 차상(茶床)이 있다. 그는 평범한 얼굴에 풍채가 우람하지도 않다. 키도 170㎝나 될까. 그러나 그의 눈빛은 예사롭지 않다. 올해 회갑을 맞은 그였지만 아직도 눈빛이 예사롭지 않고 얼굴은 동안이다. 몸 전체에서 기운이 넘쳐나고 있었다.

 

박 문주는 매일 아침 6시부터 9시 반까지 산을 탄다. 연천봉, 문필봉, 관음봉의 10㎞ 코스를 돌면서 갖가지 무술동작을 연마한다. 매주 일요일 오전 11시에는 전국에서 찾아온 제자 30∼40명과 함께 연천봉 밑에서 수련하는 장관을 연출한다. 돈도 없고 생기는 것도 없지만, 계룡산을 찾아오는 제자들과 내방객들에게 삶의 활력을 선사하는 것이 그의 일과이다. 연천봉 아래 수련장은 본산에서 약 200m 떨어져 있다. 이날도 밝은 햇살이 비쳐드는 숲에서 행해지는 수련은 부드러운 분위기 속에서도 엄한 가르침과 신체적 고통을 정면 돌파함으로써 기(氣)를 일찍 터득하게 하는 정공법을 택하고 있었다. 확실한 축기로 아랫배가 다북 차면 반탄을 철저하게 이용하는 수법(手法), 신법(身法), 보법(步法)으로 힘찬 기상과 저절로 행해지는 듯한 원운동의 묘미를 느끼게 한다.

 

기천에 입문한 뒤 그는 대양진인의 혹독한 가르침을 이겨냈다. 그가 2대 문주에 오른 날이 1996년 10월 3일 개천절이었다. 현재 박문주를 거쳐 간 기천인은 줄잡아 1000여명에 이른다. 도장은 전국에 20여곳이 되며 대학교 동아리도 점차 늘어나고 있다. 그는 “미래를 위한 종자(種子)를 얻기 위해 산중수련을 계속하고 있다”고 말했다.

 

박정진 문화평론가

 

 

 

5년 수련 경력의 오미숙씨(간호사)는 “40이 되자 몸에서 에너지가 줄어드는 것을 느꼈어요. 마침 서울 경복궁에서 행해진 기천(氣天) 공연을 보고 다음날 바로 이곳을 찾았습니다. 저에게는 기가 막힐 정도로 몸에 맞다고 생각합니다. 내공이 쌓이고부터 ‘기천을 하는 것은 단순히 신체훈련이나 무술연마를 하는 것이 아니고 기천의 흐름 속에서 배달민족의 정신과 혈맥을 느껴야 한다’는 사부님의 말씀을 느끼게 된다”고 말한다.

 

기천의 역사가 40여년이 되었어도 현재 정인은 8명, 법인은 11명에 불과하다. 그만큼 어렵다. 올해로 법인(法人) 승급을 앞두고 있는 조정현(曺定鉉)씨는 “민족의 얼을 찾기 위해 생사를 초월하는 경지에 이르러야 비로소 세계문화를 운운할 자격이 있다”고 말한다.

 

박정진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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